“우리는 무엇을 위해 일하고,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을까요?"

성공에 집착할수록 허무하다면: 'Invictus'와 'Convictus'로 본 웰다잉의 3가지 지혜

무엇을 이루었는가보다 무엇을 붙들고 살았는가가 더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글로벌 기업 임원에서 기도의 사람으로 살아간 친구 ‘준호’의 이야기를 통해, 소유와 업적을 넘어 우리가 삶에서 진정으로 쌓아야 할 가치와 후회 없는 삶의 의미를 생각합니다.
ESSAY · LIFE · FAITH

우리는 언젠가 삶의 마지막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웰다잉은 죽음을 준비하는 기술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지막을 생각하는 일은 지금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를 다시 묻게 합니다. 한 친구의 마지막 여정을 바라보며, 소유를 내려놓는다는 것과 삶에서 끝까지 남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봅니다.

물질을 비우고 내면의 평화를 찾는 웰다잉의 여정
마지막을 생각하는 일은 지금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합니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2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친구 준호의 마지막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병상에 누워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던 그는 죽음을 두려움으로만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시작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저는 한 사람의 마지막이 그가 살아온 삶을 다시 보여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준호는 한때 기업의 임원으로 일했고, 여러 시민단체와 기독교 단체를 섬기며 많은 표창과 상패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병이 깊어지고 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면서 집에 있던 물건들을 정리해야 했습니다. 오랫동안 자랑스러웠던 상패와 트로피도 하나씩 그의 곁을 떠났습니다.

그것들은 분명 그의 삶에서 의미 있는 흔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결국 물건이었습니다. 가져갈 수 없고, 더 이상 사용할 수도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 장면은 성공의 증거라고 믿었던 것들이 삶의 마지막에서는 얼마나 가벼워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상패와 트로피를 정리하며 삶의 의미를 돌아보는 노인
한때 중요했던 물건도 마지막에는 삶의 의미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비운다는 것은 과거를 부정하는 일이 아닙니다

물건을 내려놓는다고 해서 그것이 의미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상패에는 그가 살아온 시간이 담겨 있었고, 트로피에는 노력의 흔적이 있었습니다. 다만 어느 순간 우리는 그것을 삶 자체와 혼동하기 시작합니다. 성취가 나의 가치가 되고, 소유가 나의 정체성이 되면 더 많이 갖는 일이 더 잘 사는 일처럼 느껴집니다.

준호의 마지막 여정은 그 질문을 다시 던집니다. 내가 가진 것 가운데 정말 끝까지 가져가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잃어버리면 내 삶이 텅 빈 것처럼 느껴질까. 그리고 반대로 지금까지 너무 많은 힘을 들여 붙들고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비움은 단순히 물건을 버리는 행위가 아닙니다. 내 삶에서 무엇이 본질이고 무엇이 부수적인지를 구별하는 일입니다. 때로는 물건을 비우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습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 성공에 대한 집착, 지나간 상처와 후회까지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렇게 조금씩 비워낼 때 비로소 다른 것들이 들어올 공간이 생깁니다. 관계를 돌아볼 시간,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여유, 그리고 지금 내게 주어진 하루를 온전히 살아낼 공간입니다.

육체의 한계를 넘어 기도로 삶을 이어가는 노인
삶의 방식은 달라져도 의미 있는 삶은 계속될 수 있습니다

몸은 멈추어도 삶의 의미는 멈추지 않습니다

준호가 특별했던 것은 물질을 내려놓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몸이 쇠약해지고 휠체어와 침대에 의지하게 된 이후에도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기도 전사’라고 부르며 새로운 사명을 시작했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사람과 사건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과거처럼 전 세계를 여행하며 일할 수는 없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습니다.

여기서 삶의 의미에 대한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 때만 가치 있는 존재일까요. 직업을 잃고, 건강을 잃고, 사회적 역할이 줄어들면 우리의 가치도 함께 줄어드는 것일까요.

준호의 이야기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역할은 바뀔 수 있지만 존재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일하는 방식은 달라질 수 있고 활동의 범위도 줄어들 수 있지만, 누군가를 사랑하고 기도하고 기억하고 격려하는 일은 계속될 수 있습니다.

Invictus와 Convictus 사이에서

준호의 마지막 여정을 생각하면서 떠오른 것이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의 Invictus였습니다. 이 시가 보여주는 인간은 고난 앞에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책임지고 자신의 영혼을 스스로 이끌어가는 존재입니다.

I am master of my fate:
I am captain of my soul.
William Ernest Henley, Invictus

그러나 준호는 이 관점을 하나님 중심으로 다시 바라보았습니다. 그가 말한 ‘Convictus’에서는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완전히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맡기는 믿음이 중심에 놓입니다.

Jesus is the master of my fate:
Jesus is the captain of my soul.
준호가 제시한 ‘Convictus’의 결말

두 관점의 차이는 단순히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의 차이가 아닙니다. 삶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해야 한다고 믿는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한 뒤 결과와 마지막까지 하나님께 맡기는 것은 삶을 대하는 방식 자체가 다릅니다.

이것은 삶의 모든 책임을 내려놓으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할 수 있는 책임은 다하되,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까지 붙들고 살지 않는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삶의 의미와 관계를 돌아보는 다양한 사람들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을 많이 남겼는가보다 무엇을 소중히 여겼는가에 가깝습니다

웰다잉은 결국 웰리빙의 질문입니다

웰다잉을 생각하면 우리는 죽음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러나 죽음을 생각하는 일은 오히려 삶을 더 선명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언젠가 끝난다는 사실을 알면 오늘 무엇이 중요한지가 조금 더 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데 인생을 모두 사용해야 하는지, 성공을 위해 관계를 뒤로 미루어도 되는지, 인정받기 위해 지금의 시간을 모두 소비해야 하는지. 마지막을 생각하면 평소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질문들이 다시 나타납니다.

그래서 웰다잉은 삶의 마지막에 시작되는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오늘의 선택에서 이미 시작됩니다. 무엇을 사고 무엇을 버릴 것인지, 누구와 시간을 보낼 것인지, 무엇을 위해 일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를 결정하는 순간마다 우리는 조금씩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BIZMANNA INSIGHT

마지막을 생각하면 오늘의 우선순위가 달라집니다

준호의 이야기를 떠올리면 ‘무엇을 남길 것인가’라는 질문보다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먼저 떠오릅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너무 많은 것을 쌓습니다. 돈과 물건뿐 아니라 직함과 평판, 성공의 기록과 다른 사람의 인정까지 쌓아갑니다.

물론 그것들이 모두 의미 없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것들이 삶의 목적이 되는 순간입니다. 상패가 나를 증명하고, 직함이 나를 설명하고, 소유한 것이 나의 가치를 결정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어느 순간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살아가게 됩니다.

신앙은 그 방향을 다시 묻게 합니다. 내가 가진 것의 주인이 정말 나인가. 내가 이룬 성취가 정말 나의 전부인가.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까지 붙들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준호에게 마지막까지 남았던 것은 상패도 직함도 아니었습니다. 신앙이었고, 사람을 향한 마음이었고, 기도였습니다.

어쩌면 잘 산다는 것은 많은 것을 남기는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떠날 때 무엇을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는지를 아는 일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마지막을 평안하게 맞이하는 삶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늘 무엇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가에서 이미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