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리더라는 신화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 Brunch 再讀 04

좋은 리더를 선택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리더를 바꿀 수 없는 환경에서 관계와 삶을 지키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

완벽한 리더라는 신화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좋은 리더를 고를 수 없는 당신에게


살다 보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던져지는 곳들이 있다. 
선택의 여지 없이 배정된 군대의 소대, 
합격 통보를 받고 첫 출근을 한 사무실의 팀.

그곳에서 우리는 대개 ‘운’을 시험받는다. 
내 위에 서 있는 사람이 부디 상식적인 사람이기를, 
성숙한 어른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하지만 솔직히 말해보자. 
리더를 골라 잡을 수 있는 행운이 인생에 몇 번이나 찾아올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이미 지어진 성벽 안으로 들어가는 이방인일 뿐이다.

그렇다면 질문이 바뀌어야 한다.
“어떤 리더를 고를 것인가”가 아니라,
“고를 수 없는 리더 아래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는 큰 리더에 익숙해져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가. 
얼마나 멀리 확장되는가. 
얼마나 주목받는가.

그래서 리더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거대한 이름들을 떠올린다. 
방향을 만들고, 시스템을 설계하고, 시대를 움직이는 사람들.

그런데 내가 실제로 무너지는 순간, 
나를 붙잡아준 사람은 그런 거대한 리더가 아니었다. 

삶을 바꾼 건 언제나 훨씬 가까운 곳에 있었다.


가까운 관계의 힘

던바의 법칙이 말해주듯, 우리 뇌가 진심으로 감당할 수 있는 관계의 숫자는 그리 크지 않다.

수백 명의 팔로워와 수천 명의 네트워크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 같지만, 
정작 내가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을 때 
곁에서 호흡을 골라주는 사람은 고작 다섯 명 남짓이다.

수조 원의 가치를 창출하는 CEO의 말 한마디보다, 
점심시간에 건네받은 동료의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오늘 하루를 더 확실하게 구원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자주 잊고 산다.

삶을 지탱하는 건 거대한 영향력이 아니다. 
아주 좁고 밀도 높은 관계의 농도다.


관계를 선택할 수는 없지만, 설계할 수는 있다

“상사 때문에 퇴사하고 싶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그건 내 삶의 행복 결정권을 타인에게 통째로 넘겨준 것이나 다름없다는 걸.

그가 웃으면 내 하루가 밝고, 
그가 인상을 쓰면 내 세상이 무너지는 삶. 
그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같은 리더 아래에서도 어떤 사람은 소모되고, 어떤 사람은 성장한다.

차이는 리더가 만들지 않는다. 그 리더와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느냐가 만든다.


리더는 삶의 전부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관계를 설계하기로 했다.

한 사람에게 모든 기대를 걸지 않는 것. 
그와 나 사이의 적정 거리를 유지하며 내 내면의 영토를 지키는 것. 
그 사람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되, 내 삶의 해석권만큼은 절대 양보하지 않는 것.

리더는 삶의 전부가 아니다. 삶의 일부일 뿐이다.


꺾이지 않는 마음의 근육

좋은 리더는 분명 축복이다. 
하지만 불완전한 리더는 우리에게 단단해지는 법을 가르쳐준다.

비좁고 답답한 구조 속에서도 내가 누구인지 잊지 않고, 
곁에 있는 사람들과 작은 원을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리더를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강력한 저항이다.

리더는 삶의 풍경일 뿐, 삶의 목적지가 아니다. 
풍경이 거칠다고 해서 여행을 망칠 필요는 없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바람이 불면 옷깃을 여미며 
우리는 그저 우리의 길을 가면 된다.

결국 중요한 건 리더의 크기가 아니다. 
그 아래에서도 꺾이지 않고 자라나는 내 마음의 근육이니까.

* 이 글은 작가가 브런치에서 기록해온 리더십 에세이 중 하나입니다. 매주 한 편씩 브런치 다시읽기로 배달합니다.(비즈만나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