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위해 일하고,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을까요?"

성공할수록 공허하고 허무하다면: 마태복음 6장에서 찾은 '일터 번아웃' 극복 3가지

끊임없이 “다음은 무엇일까?”를 묻는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을까요? 바쁜 일상 속에서 일의 본질과 삶의 영원한 가치를 돌아봅니다. 더 많은 성취를 넘어, 진정한 만족이 어디에서 오는지 생각합니다.
LEADERSHIP · WORK · FAITH

우리는 끊임없이 다음을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더 나은 성과, 더 높은 자리, 더 많은 보상. 하나를 이루면 또 다른 목표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바쁘게 살아갈수록 만족보다 공허함이 커질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문제는 목표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삶의 기준이 언제나 ‘다음 단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일의 본질과 삶의 의미를 생각하며 영원한 가치를 바라보는 사람
더 빨리 가는 것보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우리는 하루의 많은 시간을 일하며 보냅니다. 그래서 한 번쯤은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는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답은 생계일 것입니다. 먹고살기 위해 일하고, 원하는 생활을 위해 일하며, 가족을 위해 필요한 것을 마련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일은 자신의 재능을 증명하는 일이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인정과 성취를 얻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또 누군가에게 일은 다른 사람을 돕고 세상에 기여하는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같은 일을 하고 있어도 일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일하느냐만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느냐일 것입니다.

“다음은 뭐지?”라는 질문은 끝이 없습니다

승진을 하면 다음에는 더 높은 자리를 바라보고, 목표를 달성하면 또 다른 목표를 세웁니다. 보상이 늘어나면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되고, 새로운 성취가 주는 기쁨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집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묻습니다. “다음은 뭐지?”

이 질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사람을 성장하게 만들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삶 전체가 이 질문에 끌려가기 시작하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지금 가진 것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 채 계속 다음 목표만 바라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라지는 물질적 가치와 지속되는 정신적 가치를 대비한 이미지
손에 넣은 것보다 오래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특히 다른 사람의 성공을 쉽게 볼 수 있는 시대에는 비교가 끊이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더 좋은 집을 사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더 많은 경험을 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면 나 역시 무엇인가 더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생깁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삶을 기준으로 삼으면 우리의 질문에는 끝이 없어집니다. 남보다 앞서면 또 다른 사람이 보이고, 하나를 얻으면 또 하나를 원하게 됩니다. 결국 삶의 만족이 성취의 크기에 따라 움직이게 됩니다.

성경은 ‘다른 곳’을 바라보게 합니다

성경은 물질적 성공 자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무엇을 궁극적인 가치로 삼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른 방향을 제시합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6:19-20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무엇을 쌓으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세상의 성취와 물질은 중요할 수 있지만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를 어디에 쌓고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일시적인 만족과 지속적인 가치를 상징하는 이미지
순간의 만족과 오래 남는 가치는 서로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썩지 않는 것을 위해 일한다는 것

우리는 먹기 위해 일하고, 살아가기 위해 일합니다. 현실적인 필요를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육체의 필요를 넘어 우리의 존재를 채우는 것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6:27, 35

이 말씀은 우리의 일과 삶을 바라보는 기준을 바꾸어 놓습니다. 지금 당장 얻는 만족만을 좇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의미가 남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남기는지, 관계 속에서 무엇을 만들어가는지, 그리고 우리의 삶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사람의 인정에서 벗어나 일의 의미를 찾는 것

일하다 보면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좋은 평가를 받고 싶고,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고, 내가 한 일을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그런 마음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사람의 인정에 삶의 가치 전체를 걸어버리면 그것 역시 오래 지속될 수 없습니다. 오늘 주목받던 사람이 내일은 잊힐 수 있고, 지금의 자리가 언제까지나 유지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골로새서 3:23-24

이 말씀은 일의 의미를 사람의 평가보다 더 깊은 곳에 두도록 합니다. 누가 알아주느냐보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일하고 있는지가 중요해집니다. 그렇게 보면 평범해 보이는 일도 다른 의미를 갖게 됩니다.

한시적인 명예와 지속되는 내면의 가치를 대비한 이미지
스포트라이트는 사라져도 삶의 의미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의 삶을 다시 바라보는 질문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목표일까요. 어쩌면 그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다시 확인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승진과 보상은 중요합니다. 성취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삶의 전부가 되면 우리는 아무리 많은 것을 이루어도 다시 “다음은 뭐지?”라고 묻게 됩니다.

반대로 삶의 기준을 조금 더 깊은 곳에 두면 같은 일을 하더라도 질문이 달라집니다. 얼마나 더 얻을 것인가에서, 내가 가진 것으로 무엇을 만들 것인가로. 얼마나 빨리 올라갈 것인가에서, 지금 맡겨진 일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로 시선이 이동합니다.

BIZMANNA INSIGHT

“다음은 무엇인가?”보다 중요한 질문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더 나은 직업을 찾고,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더 높은 목표를 세우는 일은 분명 삶을 성장시키는 힘이 됩니다. 문제는 앞으로 가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릴 때입니다.

무엇을 이루었는지는 기억하지만, 왜 그것을 이루려고 했는지는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더 많은 것을 얻었는데도 마음이 허전하고, 바쁘게 살아왔는데 정작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때로는 멈추어야 합니다. “다음은 무엇인가?”라는 질문 대신 “지금 내게 맡겨진 것은 무엇인가?”라고 물어보는 것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누구에게 의미가 있는지,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무엇을 남기고 싶은지를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영원한 가치를 바라본다는 것은 현실을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현실 속에서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를 분별하는 기준을 갖는 일에 가깝습니다. 더 많이 얻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시간과 능력과 관계를 무엇을 위해 사용할 것인지 다시 선택하는 것입니다.

결국 삶의 질문은 “다음에는 무엇을 얻을 것인가?”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지금 맡겨진 이 하루를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그 질문 앞에 잠시 머무를 때, 우리는 비로소 앞만 보며 달려오던 삶에서 놓치고 있던 것들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