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위해 일하고,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을까요?"

​매일 출근길이 피곤하고 지친다면: 골로새서에서 찾은 '노동의 가치' 3가지

번아웃과 조용한 퇴사 속에서 우리는 일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성경이 말하는 일의 본래 의미를 돌아보고, 일의 주인과 일터를 바라보는 시선을 새롭게 합니다. 직장을 단순한 생계의 공간을 넘어 섬김과 소명의 자리로 바라보는 세 가지 관점을 생각합니다.
BUSINESS THEOLOGY · WORK · FAITH

우리는 매일 일을 합니다. 때로는 일이 삶의 의미가 되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벗어나고 싶은 의무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일은 본래부터 우리를 힘들게 하기 위해 주어진 것일까요? 성경은 노동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일은 본래 축복이었고, 우리가 경험하는 수고와 고통은 그 본래 의미가 왜곡된 결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노동의 축복을 상징하는 일터의 모습
일터와 삶 속에서 노동의 의미를 다시 바라보는 사람

왜 일은 점점 버거워지는가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우리는 일과 마주합니다. 출근길에 오르고, 컴퓨터를 켜고, 정해진 시간에 해야 할 일을 시작합니다. 어떤 날에는 성취감도 있지만, 어떤 날에는 그저 “오늘도 이 일을 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노동절이 상징하듯 일은 오랫동안 사회를 움직여온 중요한 가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에게 일은 기쁨이나 성취보다 피로와 스트레스를 먼저 떠올리게 합니다. 일을 생계를 위한 필요악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그리 낯선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일 자체에 있는 것일까요? 성경은 다른 출발점을 보여줍니다. 일 자체가 저주였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타락 이후 일에 수고와 고통이 더해졌다는 것입니다.

일은 원래 축복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일의 시작은 에덴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창조 세계를 돌보고 다스리는 책임을 맡기셨습니다. 일은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돌보는 방식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세기 1:26-30

그러므로 노동의 본래 의미는 단순히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능력과 책임을 통해 창조 세계를 돌보고 가꾸는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일을 통해 무언가를 만들고,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행위에는 본래부터 의미가 있었습니다.

타락은 일의 의미를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3장은 인간의 불순종 이후 일의 모습이 달라졌음을 보여줍니다. 일 자체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일에 수고와 좌절이 들어왔습니다.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창세기 3:17-19

그래서 우리는 일을 하면서 가시덤불을 만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가 있고,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지칠 때도 있습니다. 성실하게 일했는데도 인정받지 못하거나, 자신이 만든 성과가 예상하지 못한 문제로 사라지기도 합니다.

일의 어려움을 경험한다고 해서 내가 잘못된 길에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의 관점에서는 노동에 수고가 따라오는 현실 자체가 인간의 삶에 나타난 깊은 균열을 보여줍니다.

에덴의 풍요로움과 타락 이후 노동의 수고를 대비해 보여주는 이미지
풍요로운 에덴과 땀 흘려 일하는 인간의 대비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

일의 현실이 이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성경은 단순히 일을 견디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일을 바라보는 방향을 다시 세우도록 합니다. 그 중심에는 세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첫째,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

우리는 보통 상사에게 인정받기 위해 일하고, 성과를 얻기 위해 일하며, 자신의 만족을 위해 일합니다. 그것들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보다 더 깊은 기준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골로새서 3:23-24

이 말씀은 일을 종교적인 활동으로 바꾸라는 뜻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하는 평범한 업무에도 다른 기준을 가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는 일이라도 정직하게 하고, 작은 일이라도 성실하게 하고, 맡겨진 일을 대충 넘기지 않는 태도입니다.

상사의 평가만을 바라볼 때 우리의 일은 평가에 따라 흔들립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섬긴다는 관점을 가질 때 일의 의미가 조금 달라집니다. 일의 가치는 사람의 박수만으로 결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 지금의 일을 선물로 바라볼 수 있는가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는 우리의 삶에서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때로는 지금의 일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고, 다른 일을 찾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한 번쯤 지금 내게 주어진 일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이 없나니
내가 보니 이것도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
전도서 2:24-26

만족은 언제나 환경을 바꾸는 것에서 시작되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같은 환경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때 시작됩니다. 내가 가진 재능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 지금 맡겨진 일을 통해 누구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지 생각하다 보면 평범한 일에서도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현대적인 사무실에서 기도하며 일하는 사람
일터에서 자신의 일을 하나님께 맡기는 모습

셋째, 일을 통해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일터는 우리가 신앙을 말로 설명하는 장소이기 전에 신앙을 살아내는 장소입니다. 정직하게 일하고,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하고, 동료를 존중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 자체가 우리의 가치관을 보여줍니다.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항상 온유와 두려움으로 대답할 것을 예비하되.”
베드로전서 3:15

신앙과 일의 간격이 멀어질수록 우리의 말과 행동도 쉽게 분리됩니다. 교회에서는 믿음을 이야기하지만 직장에서는 다른 기준으로 행동한다면, 사람들은 우리가 말하는 신앙보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먼저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일터에서의 진정성은 중요합니다. 탁월함도 중요하지만 정직함이 필요하고, 성과도 중요하지만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일하는 방식 자체가 우리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순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직장에서 서로 돕고 존중하며 소통하는 사람들
일터에서 관계와 존중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는 모습
BIZMANNA INSIGHT

일의 의미를 회복한다는 것

우리는 일을 너무 쉽게 생계와 연결합니다. 월급을 받고, 생활비를 마련하고,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일합니다. 물론 그것은 현실적으로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러나 일이 그것뿐이라면 월급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 우리의 일도 함께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성경은 일을 그보다 오래된 자리에서 바라봅니다. 인간이 타락하기 전부터 일은 존재했습니다. 그러므로 노동의 본래 의미는 죄 이후에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수고와 고통은 나중에 들어왔지만, 일 자체는 하나님의 창조 안에 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더 좋은 직장’만이 아니라 일을 바라보는 시선인지도 모릅니다. 지금의 일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그 일을 통해 내가 무엇을 만들고 누구에게 유익을 주며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지를 다시 묻는 것입니다.

일은 여전히 힘들 수 있습니다. 가시덤불도 있고 땀도 흘려야 합니다. 그러나 그 수고 때문에 일의 모든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내가 하는 작은 일에도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을 유익하게 하며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출근길에 스스로에게 한 번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나는 오늘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그리고 그 질문의 답이 조금 달라진다면, 어쩌면 같은 일터에서도 전혀 다른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