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의 지시를 따르는 것과 자신의 판단을 지키는 것. 두 가지는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걸까요? 팔로워십은 조직의 질서를 존중하면서도 스스로 생각하고 책임 있게 행동하는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순종은 생각을 멈추는 일이 아니다
직장에서 순종은 흔히 긍정적인 덕목으로 여겨집니다. 상사의 지시를 잘 따르고, 조직의 결정을 존중하며, 맡은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사람은 신뢰를 얻기 쉽습니다.
실제로 조직이 함께 움직이려면 일정한 질서가 필요합니다. 모든 구성원이 매번 자신의 판단만을 앞세운다면 결정은 늦어지고 협력은 어려워집니다.
그러나 순종이 생각하지 않는 태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시를 따르는 것과 지시의 목적을 이해하는 것은 다릅니다. 전자는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 데 집중하지만, 후자는 그 일이 왜 필요한지, 어떤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지까지 살핍니다.
같은 지시를 받더라도 그 목적을 이해한 사람은 상황이 달라졌을 때 더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반면 지시의 문장만 기억하는 사람은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생기면 다시 명령을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좋은 팔로워는 지시를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다만 지시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의 판단을 내려놓지도 않습니다.
상사의 지시와 자신의 판단이 다를 때
상사의 지시에 의문이 생기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이미 다른 방법을 시도해 보았다면 더 효율적인 대안을 알고 있을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구성원이 상사보다 구체적인 상황을 잘 이해할 때도 있습니다. 반대로 상사는 조직 전체의 사정을 고려해 구성원이 미처 알지 못하는 결정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상사의 판단이 틀렸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직급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그 판단이 언제나 옳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반대하거나 따르는 두 가지 선택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먼저 지시의 목적과 배경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왜 이 방법을 선택했는지, 어떤 결과를 기대하는지 질문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견이 있다면 그 이유와 함께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런 질문은 상사의 권위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더 나은 결정을 내리기 위한 참여입니다. 물론 모든 조직에서 질문이 환영받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의견을 불충으로 받아들이는 상사도 있고, 설명을 요구하는 구성원을 불편하게 여기는 조직도 있습니다. 그런 현실을 무시한 채 누구에게나 적극적으로 반대하라고 권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판단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는 일은 중요합니다. 무조건적인 동의와 감정적인 반대 사이에도 충분히 넓은 공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르는 것과 책임지는 것은 다르다
상사의 지시에 따랐다는 사실이 모든 책임을 대신해 주지는 않습니다.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구성원도 자신이 맡은 역할과 행동에 대해 설명할 책임이 있습니다. 특히 지시가 잘못된 결과를 낳을 가능성을 알고 있었다면, 그 위험을 알리고 대안을 검토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상사가 시켜서 했습니다”라는 말은 상황을 설명할 수는 있어도 언제나 충분한 답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를 구성원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서도 안 됩니다. 의사결정 권한과 최종 책임은 직급과 역할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조직은 권한을 가진 사람에게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여기서 팔로워십의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나는 지시를 수행하는 사람으로서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가? 그리고 내가 결정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가?
좋은 팔로워는 자신의 역할을 넘어 모든 문제를 떠안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이 맡은 일은 책임 있게 수행하고, 자신의 권한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적절한 사람에게 알립니다. 잘못된 결과가 예상되면 침묵하지 않고, 문제가 발생하면 사실을 숨기지 않습니다.
책임감은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는 태도가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정확하게 구분하는 데서도 드러납니다.
모든 지시를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업무 방식에 대한 의견 차이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지시는 구분해야 합니다. 업무의 우선순위나 실행 방법에 대한 차이라면 충분히 논의하고 조정할 수 있습니다. 상사의 판단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합법적이고 정당한 결정이라면 공동의 목표를 위해 실행해야 하는 상황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시가 사실을 왜곡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부당한 피해를 주거나, 법과 윤리의 기준을 벗어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조직의 질서를 지킨다는 이유로 잘못된 행동까지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직급은 업무를 지시할 권한을 부여할 수 있지만, 모든 행동을 정당하게 만드는 면허는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무엇이 문제인지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가능한 경우 근거를 갖춰 이의를 제기해야 합니다. 사안의 심각성에 따라 조직의 공식적인 보고 절차나 적절한 외부 기관의 도움을 고려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 대응 방법은 문제의 성격과 위험, 조직의 제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좋은 리더는 질문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든다
팔로워에게 독립적인 판단을 요구하면서 질문하는 사람을 불편하게 여긴다면 조직은 모순에 빠집니다. 구성원에게 주도성을 기대하면서 실제로는 지시를 그대로 수행하는 사람만 인정한다면, 구성원은 점점 판단을 유보하게 됩니다. 문제를 발견해도 말하지 않고, 더 나은 방법을 알고 있어도 제안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리더는 구성원들이 동의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반대 의견을 말할 수 없어서 침묵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조직에서는 팔로워십이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독립적인 사고에는 질문할 수 있는 여지가 필요하고, 책임 있는 참여에는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리더 역시 자신의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구성원의 질문을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만 해석하지 않고, 더 나은 결정을 위한 정보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모든 의견을 수용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충분히 듣고 검토한 뒤 다른 결정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질문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평가하거나 불이익을 주지 않는 태도입니다.
팔로워십은 구성원 혼자 만들어 내는 능력이 아닙니다. 질문하는 팔로워와 질문을 받아들이는 리더가 만날 때 조직의 판단력도 함께 성장합니다.
존중은 자기 판단을 포기하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직장생활에서 우리는 누구의 말을 따라야 하는지 자주 고민합니다. 상사의 경험을 존중해야 하고, 조직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하며,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협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자신의 판단을 어디까지 내려놓아야 하는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존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모든 판단에 동의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상대의 판단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질문할 수 있고, 자신의 생각을 근거와 함께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태도는 일터를 바라보는 관점과도 연결됩니다. 일터는 지시하는 사람과 따르는 사람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공간이면서, 서로 다른 판단과 경험이 만나 공동의 결과를 만들어 가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리더가 모든 답을 알고 있을 수 없듯이 팔로워가 모든 지시의 배경을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서로의 한계를 인정할 때 질문은 불복종이 아니라 협력의 일부가 됩니다.
좋은 팔로워는 상사를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판단을 지킵니다. 좋은 리더는 구성원의 판단을 존중하면서도 필요한 결정을 내립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역할에 책임을 지되, 상대방에게 생각할 여지를 남겨 둡니다.
어쩌면 성숙한 팔로워십의 핵심은 누구의 말을 따르느냐보다,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판단과 책임을 어떻게 존중하느냐에 있을 것입니다.